│곡옥, 국립공주박물관│
 
 

│곡옥, 국립공주박물관│
 
 
문화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간다.  
중국에서는 옥기시대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학계에 발표했다.
 
배달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의 강역이던 내몽골 지역과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세계 4대 문명보다
적게는 1천 년에서, 2천 년 더 앞선 옥기중심의 고대문명 유적이 대거 발굴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문화를 홍산문명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이형구 박사는 발해연안문명이라고 부른다.
 
홍산문명에 대한 것은 다음에 자세히 다루어 보기로 하고 옥문화의 기본만 살펴보자.
흥륭와 문화 유적지에서는 7, 8천 년이나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걸이가 발굴되었는데,
이 옥귀걸이와 같은 유물들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리에서도 나왔다.
이것은 만주와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한다.
 
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뜻하고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옥황상제
玉皇上帝라고 한다.
홍산인들은 옥
으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 신과 소통하는 신물, 천제에 쓰는 제기 등을 만들었다.
 
주역 '설괘전'에서는 하늘의 덕성을 옥
으로 표현하였다.
은 우주의 모든 신을 다스리는 옥황상제님의 마음, 대자연의 순수성과 영원한 생명성을 상징한다.
 
 


 
 
고조선도 실제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역사학계가 고조선 이전 시대의 홍산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실이 생긴 것이 불과 6년 전인 2009년이라는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렵다.
그것도 강단사학계의 자의가 아닌 시민들과 재야사학계의 부단한 노력에 못이겨 마지못해 만들줬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조선의 역사는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ic Age)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의 사료와 우리의 삼국유사에도 고조선의 기록이 엄연히 있음에도 말이다.
역사기록이 있으며 실제 유물이 있는데 어떻게 선사시대
(先史時代 Prehistoric Age)인가 모르겠다.

 
전국에 있는 우리나라 박물관에 가면 삼국사기에 근거해 삼국시대 이전은 실제 선사시대로 다룬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Prehistoric Age)는 다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나뉜다.
19세기 덴마크 선사 고고학자인 CJ톰센이 선사시대를 편의상 재료에 따른 석기, 청동기, 철기로 
구분하면서 고대문명의 정신문화와 영성문화를 말살해 놓은 역사관을 일제로부터 그대로 답습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R.G 콜링우드는 역사철학론에서
 "
역사가가 자기 시대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형성시킨
  힘을 이해하려면 그는 자기 시대의 철학을 연구해야 한다. ... 철학자도 또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
철학이 없는 역사는, 유물론적으로 인식된 세계에서 기계적이고 불변적인 힘이 작용하는 역사인 셈이며,
  역사가 없는 철학은 우로 좌로 위로 아래로 이유 없이 부는 교의의 바람일 뿐이다. 둘다 괴물이다.
  그러나 철학으로 풍부해진 역사는, 인간정신의 역사로서, 
  이 인간정신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세계를 스스로 수립하려는 시도를 행한다. 
  역사에 의해 풍부해진 정신은, 지적 문제를 끝임 없이 해결해나가는 발전적인 철학이다.
  역사는 연대기가 아니고, 연대기는 역사가 자라는데 필요한 일부분 이다."고 했다.
 
고대인들이 어떤 사유와 철학을 했는지 궁금하다.
저 아득하고 광활한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
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독일의 종교학자 칼 바이트H.Kalweit는 인류태고의 황금시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먼 옛날은 인간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로
그때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신
과 소통할 수 있었고,
죽음을 모르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
 
거석문화를 연구하는 피터 마샬Petwr Marshall은,
'거석 유적지가 전투 요새로 쓰인 흔적이 없고 주변에서 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고대 사람들은 평화롭고 창조적인 문명의 황금시대를 누렸다'고 한다.  
 
선사 고고학자인 CJ톰센의 역사시대 구분법에는 고대로 갈수록 미개하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시대 구분법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서구의 과학주의 역사관을 심어준 일본마저도 서양의 논리에 맹목적으로 맞추지 않는다.
일본 역사의 시대구분은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4단계로 나누고,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자리잡은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다시 11개의 시대로 나눈다.
 
자주적이며 진취적인 우리의 역사관이 없는 게 아니다.
결국, 유적과 유물, 사료를 보는 모든 것의 배경에는 역사관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정통사서인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의 편향된 역사관으로 기술된 역사서다.
따라서, 그런 문제점을 반드시 인지하고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루어야 한다.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며 객관적 사실보다 역사해석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객관적 사실인 북한의 지뢰도발을 남북의 고위관계자가 만나 회담한 결론이 뭔가?
우리 정부측 대표는 북한으로부터 유감표명을 이끌어 냈으며, 그것을 사과로 해석했다.
하지만, 북측은 우리의 그런 해석을 부정하며 유감은 유감일뿐, 사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해석학에서 볼 때, 전통해석과 정통해석이 있는데, 올바른 해석은 우주와 내가 소통되고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와 내가 소통되는 해석체계가 정통해석이자 창조적 해석이다.
해석의 결론은 최종적 종합
Final Synthesis이다.
동서의 정신론, 우주론에 대한 깨달음의 모든 지혜를 융합해 최종적 해석을 해야 한다.
 
백제 무령왕릉의 곡옥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유적에서 곡옥이 공통적으로 출토된다.
옥玉은 우리의 상고역사와 그 역사를 구축한 정신문화와 직결되며 고대사와 연결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곡옥,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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