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촌리 출토 II-4호분 금동관모, 국립공주박물관│
삼국사기 제24권의 백제본기 고이왕 28년(서기 261) 기록을 보면,
고이왕께서 금화로 장식한 오라관烏羅冠을 쓰고 정사를 보셨다고 나와 있다.
二十八年 春正月初吉 王服紫大袖袍靑錦袴金花飾烏羅冠素皮帶烏韋履 坐南堂聽事
28년(서기 261) 봄 정월초 길한 날, 임금께서 소매 넓은 자주빛 법복과 청비단 바지를 입고
금화로 장식한 오라관을 쓰고 혁대를 두르시고 오위리를 신고 궁전 남방에 좌정하시어 정사를 보고받으셨다.
오라관烏羅冠에는 용무늬龍紋를 중심으로 하여 화염무늬火焰紋 등이 사용되었다.
금제관식과 마찬가지로 광명문화가 담겨있다.
또한 새의 형상을 본받았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삼족오에서 알 수 있듯이 광명의 정신을 상징한다. 삼족오는 삼신문화에서 유래한다.
둘째, 새는 고대문화에서 하느님(삼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자다.
소도와 같은 신성한 곳에 솟대를 세웠으며, 일본의 신사에서도 입구에 도리이(새)를 세웠다.
종합해보면, 왕이 어떤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광명의 정신으로 만백성을 다스리는 삼신상제님의 대행자임을 뜻한다.
사서 기록을 근거로 오라관烏羅冠의 가장 오래된 시기는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간다.
태백일사 삼심오제본기의 고조선 기록에서 단군으로부터 삼신상제님을 수호하는 벼슬인 천왕랑이
오우관을 하사받는 내용이 나온다.
源花는 稱女郞이오 男은 曰花郞이니 又云天王郞이라.
自上으로 命賜烏羽冠하야 加冠에 有儀注라.
時에 封大樹하야 爲桓雄神像而拜之라
(삼신오제본기, 태백일사)
원화源花는 여랑을 말하고, 남자는 화랑花郞이라 하는데 천왕랑天王郞이라고 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오우관烏羽冠을 하사 받아 썼는데 관을 쓸 때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신상으로 삼아 여기에 배례를 올렸다.
단군조선의 오우관 문화는 북부여로 계승되었는데,
이는 북부여 창업의 시조인 해모수단군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朝代記에 曰 「解慕漱는 從天而降하사 嘗居于熊心山이라가 起兵於夫餘古都하시고
爲衆所推하야 遂立國稱王하시니 是謂夫餘始祖也시니라.
着烏羽冠하시고 佩龍光劒하시고 乘五龍車하시니 從者百餘人이오 朝則聽事하시고 暮則登天하시니
(고구려국본기, 태백일사)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해모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일찍이 웅심산熊心山(검마산)에서 사셨다.
부여의 옛 도읍(백악산 아사달)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의 추대를 받아 드디어 나라를 세워 왕이 되셨다.
이 분이 부여의 시조이시다.
머리에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 용광검龍光劒을 차고, 오룡거를 타고 다니시니,
따르는 자가 백여 명이었다. 아침이 되면 정사를 돌보고 저물면 등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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