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내부 모형, 국립공주박물관│
 
 

│매지권(묘지석), 국립공주박물관│
 
 

│매지권(묘지석), 국립공주박물관│

 
사후세계는 정말 있는 걸까?
종교혐오주의와 과학지상주의로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를 살고 있어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죽음을 대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저 백제 무령왕릉을 볼 때, 현대의 장례문화와 극명히 다른 내세관을 엿볼 수 있다.
죽으면 끝이라는 현대인들에게 왕의 릉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유물들은 어떻게 다가올까?
과학적 실증주의에 따라 이 유물들을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과학을 당시의 문화를 입체적으로, 유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활용할 수는 있다.
 
결론은, 백제인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는 것이 사실이며, 그것은 보편적인 진실이다.
무령왕릉을 바탕으로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현재의 내 삶을 얼마나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바라볼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장례문화에서 사후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변함이 없었으나
현대의 과학문명이 보편화되면서 바뀌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수천 점의 유물은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연장임을 묵묵히 전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죽음'을 '돌아가신다'로 표현하지 않는가!
밥 그릇과 장신구들, 여러가지 생활도구들을 함께 매장한 이유가
단순히 쓰던 물건들 함께 묻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무령왕릉 매지석에 기록된 글에서도 알 수 있다.
매지권에 대한 학계의 해석에 오류가 있어 제대로 해석해 놓은 분의 블로그의 글로 인용한다.
 
... 우선 묘지석의 형태상 끊은 건 이렇다.
錢一萬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寧東大將軍百濟斯麻主以前件錢詣土王土伯土父母土下衆官二千石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不從律令

상식에 따른 끊음은 이렇다.
錢一萬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百濟斯麻
主以前件
錢詣土王土伯土父母
土下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不從律令
 
이제 해석이다.
 
錢一萬文右一件(전일만문우일건)
일금 1만냥은 (글을 읽는 사람 기준이 아닌 땅 속을 기준으로) 오른 쪽 계약 사실의 지불금이다.

乙巳年八月十二日(을사년팔월십이일, 525년 8월 12일)
寧東大將軍百濟斯麻(영동대장군 백제의 사마는)
主以前件(앞으로 기록되는 조항대로 주인이 될 것이다.)
 
錢詣(전예), 土王(토왕)과 土伯(토백), 土父母(토부모)
돈을 가져할 이들은 다음과 같다.
이곳 땅의 왕과 이곳 땅의 맹주(盟主), 이곳에 묻힌 조상들이다.
 
土下衆官(토하중관) 二千石(이천석)
그리고 매우 낮은 관리인 土下衆官(토하중관, 잡신들)들은 二千石(2천 석)을 받으라.
 
買申地(매신지)
왕궁의 서남쪽인 申地(신지)의 땅을 사서
爲墓(위묘)
묘를 꾸미니
故(고)
그러므로
立券(입권) 爲(위)
증서를 작성하여
明不從律令(위명불종률령)
(어떠한) 법률에도 저촉되지 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janoo/50157586555)
 
현실의 땅주인에게 묘자리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
토지신에게, 토지를 관장하는 지하세계의 관료신명들에게 땅의 가치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그에 따른 토지매매계약서를 작성해 놓았다.
 
 

│수라용 그릇과 수저, 국립공주박물관│
 
 

│수라용 은잔, 국립공주박물관│
 
저 푸른 하늘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과학자가, 종교인이, 철학자가, 농부가, 시인이 바라보는 하늘이 다 다르다.
물리학의 법칙이 작용하는 우주공간인가?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인가?
인간이 궁극으로 도달해야 할 이상인가?
비와 이슬을 내려주는 고마운 존재인가?
초월적 자아인가?
 
인류문명이 지금까지 발전을 해오며 구축한 지혜는 독선이 아니다.
다름을 존중하며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는 것이 진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본다.
지구는 수많은 종(種, species)의 생명체를 포용하고 있다.
고대인들이 죽음을 바라본 내세관은 우리의 삶과 죽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중심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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