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을 맞으며, 우리 사회의 가장 화두는 '통일'이다. 지난 역사로부터 통일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 온 지난날,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며 암울한 일제치하로부터 광복을 맞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자주적인 광복이 아닌 급작스럽게 찾아 온 해방이었다. 항일운동을 하시던 분들이 광복을 위해 그리고 그 이후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조금만 더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준비되지 않은 해방을 맞은 우리는 고대사를 잃어버린 악업으로 근대사 마저 왜곡되어 이념과 사상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룩하지 못하고 2차 대전 승전국들의 이권에 따라 동족분단의 비극을 맞고 말았다.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개성공단 전면폐쇄로 남북관계가 대경색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좀 더 멀리 내다보며, 남북통일을 위한 만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 포츠담은 일제로부터 우리민족이 해방된 포츠담 선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선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 장제스 총통 등이 정상 회담에 참가하여, 일본에게 항복을 권고함과 동시에 2차 대전 패전에 따른 일본의 전후 처리를 다루었다.

포츠담 선언을 한 곳은 포츠담 체칠리엔호프궁인데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하고 상수시 궁전만 보게 되었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주차장을 지나 풍차카페


저 풍차 아래에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이 있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안내판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입구 악사


일행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이 악사분께서 어떻게 우리가 한국사람인지 아시고 아리랑을 연주해주셨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분수대


분수대 너머 멀리서 보이는 것이 상수시 신궁전이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입장하는 곳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의 쉼터(우리의 정자 비슷한 듯)


상수시Sanssouci는 프랑스어로 '근심 걱정없는'이란 뜻이다.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 양쪽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황금상으로 조각한 우리의 정자 비슷한 공간이 각각 있다. 원래 이곳은 포도밭이었는데 1745년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여름을 지낼 별궁을 원해서 세우게 되었다. 우리네 경복궁도 조선의 법궁이지만 너무나 공적인 공간이어서 창덕궁을 지어 좀더 여유롭게 정사를 보기 위해 궁궐을 지은 것과 같지 않나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 보다 창덕궁을 좋아한 왕들이 많았다. 울창한 숲과 연못, 동산 등 자연적인 공간을 최대한 살려 궁궐을 조성했는데, 창덕궁의 후원인 창경궁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이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태양신을 상징


4면에 태양신이 있음 궁궐 반대편(서편)에는 달의 신이 있음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면


서양 건축물들의 특징인데, 건물에 저렇게 각종 조각상들을 조성해 놓았다. 고전적인 궁궐뿐만 아니라 근현대적인 건축물이 거의 비슷하다.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벽사(辟邪, 삿된 것이나 재앙을 물리침)의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종묘 등의 지붕에서 잡상을 볼 수 있는데, 같은 이치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


서양의 정원 문화와 우리의 정원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정형화된 것과 자연스러움의 대비다. 정서적으로는 자연스러움이 좋지만, 누가 더 우위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각 문화권의 고유한 영역이니 서로 존종하는 게 더 좋지 않나 생각한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 분수대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별궁(공주의 처소?)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에서 앞마당의 넓은 정원을 둘러 본 뒤, 서편으로 걷다보면 공주를 위한 개인적인 공간으로 생각되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ㅠㅠ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공주의 처소 내부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정원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화려한 복도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궁궐 내부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어떤 분인지 기억이 안남 ㅜㅜ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벽난로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만자문양의 천장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내부에서 가장 놀랍게 눈에 띈 천장의 문양이다. 중심에는 12성좌의 별자리를, 더 중심에는 팔수문양과 원밖에는 사신도와 같은 개념의 그림을 그렸고 만자문양으로 외곽을 돌렸다. 독일 왕가의 문화에도 동방문화의 원형이 흘러들어가 흡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로코코 양식의 화려함


장엄한 바로크 양식 이후의 대표적인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졌다. 화려함을 원한 대신들과 달리 프리드리히 2세가 검소하게 지었다고 하지만 로코코 양식 자체가 우아하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며 부드러운 곡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화려해 보인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도자기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샹들리에가 달린 천장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의 원래 자리가 포토밭이었음을 보여준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미술품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촛대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미술명화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샹들리에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내부문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침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볼 수 있는 왕이나 왕비의 침전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침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침실


상수시궁전Sanssouci Palace 벽난로


서양의 벽난로 문화는 우리의 온돌문화와 견주어 볼 때, 취약한 점이 많다고 본다. 실제 벽난로의 구조상 열기가 방안 공간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고 굴뚝을 통해 밖으로 다 빠져버리게 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을 때도 서양문화에서 애완동물을 실내에서 키우게 된 것이 동물의 체온에서도 온기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곰Bear을 어원으로 하는 베를린은 프러시아제국의 장대한 왕궁, 베를린 자유대와 공과대학 건물들이 건설된 고전주의적 도시다. 일반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외형과 내부가 너무나 다른 베를린 자유대의 도서관 건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곳에 세계적인 고고학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 구박물관Altes Museum, 신박물관Neues Museum, 국립미술관Altes National Galerie 등이 있다.

국립미술관Altes National Galerie


구박물관Altes Museum


베를린 대성당


구박물관을 가는 길 오른편에 베를린 대성당이 있다. 구박물관 뒤로는 신박물관과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으며, 오른편에 미술관이 있으며 그 사이에 정원이 있다. 박물관 주변 정경치고는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박물관Neues Museum 정원의 사자상


신박물관 옆의 정원


구박물관과 미술관을 잇는 통로에 마련된 정원


페르가몬 박물관을 보러 간날, 마침 우리의 데모와 같으면서도 다른 독일 녹색당의 자유시위를 볼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무선헤드폰을 착용한 채 춤을 추며 즐겁게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시위대 중 한 젊은 친구가 내게 와서 웃으며 헤드폰을 씌워줬는데, 비트가 빠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물론 베를린 경찰들이 나와서 이들의 동선에 따라 앞뒤로 교통통제를 했다. 이곳에서 오랜기간 유학 중인 지인의 말에 따르면, 독일 녹색당은 환경보호주의 운동을 강하게 주장하며 반전평화운동, 인권운동 등을 주도하는 정당으로 기성 정당과 차별된 뜻을 가진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페르가몬을 보러 간 날 마주친 독일의 녹색당의 청년들1


페르가몬을 보러 간 날 마주친 독일의 녹색당의 청년들2


페르가몬을 보러 간 날 마주친 독일의 녹색당의 청년들3


페르가몬은 기원전 3세기경 소아시아에 세워진 고대 왕국이다. 지금의 터키 베르가마Bergama 지역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제우스의 대제단,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 등을 그대로(약탈) 옮겨와서 실물을 전시해 놓았다. 우리가 보러 간 날이 마지막 관람이어서 이후로 27년간의 대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동상 뒤로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행렬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기원전 6세기경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세운 이슈타르 문을 보기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쐐기문자 점토판에 조각해 놓은 수메르 왕의 머리 꼭대기에 솟은 상투였다. 수메르어로도 상투를 상투라 한다. 영어에서 성인을 뜻하는 saint가  상투에서 왔다. '상투'는 '상두'와 같은 말로 상두는 북두칠성을 뜻한다. 실제 상투를 틀 때, 앞으로 4번, 뒤로 3번 총 7번을 꼬아서 고정시킨다. 상투를 틀었다는 것은 하늘의 북두칠성과 소통한다는 의미다. 북두칠성은 뭇 별의 천자별로서 인간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별로 모든 별들이 북두칠성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재미있게도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큰곰자리, 작은곰자리라 한다. 우리민족이 곰을 토템으로 한 진짜 이유이기도하다. 얼마전 과학자들이 큰곰자리 북두칠성에서 우주의 극한에너지 우주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깨달음을 종합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상투문화는 우리 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에서 비롯한 것이며 유교문화의 잔재가 아니다.

수메르의 왕


쐐기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의 수메르 왕


상투를 튼 수메르의 왕


상투문화는 한민족의 고유문화로 일제의 단발령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나 근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통틀어 우리민족은 상투문화를 지켜왔다. 영화에서 보듯 중국과 일본문화에서 상투를 튼 것은 역사왜곡이며 실제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는 변발을 했고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투는 우리의 고유문화다.

이러한 상투문화가 어떻게 수메르 문화에 있을까? 그 비밀은 삼국유사 제1 기이편의 고조선조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환국의 신비를 찾으면 답을 얻을 수 있다.


Pergamonmuseum
Bodestraße 1-3, 10178 Berlin,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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