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서구문화가 유일신으로 변질되었지만, 초기 문화는 다신多神이었다. 서양문화의 젖줄인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폴론, 포세이돈 같은 다양한 신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도 천신天神, 산신山神, 수신水神, 터주신, 조왕신 등을 섬기는 다신多神문화였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라는 만화를 보면 천상과 지하세계는 물론, 인간계에서도 다신문화가 수천 년을 지속해왔다. 서양과 우리는 이런 다신문화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다신多神을 섬기는 나라, 8만 5천여 개의 신사가 있는 신들의 나라가 동양의 일본이다. 인간을 신神으로 섬기는 조상신 문화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해마다 일본 극우정치인들의 신사참배(2차 대전 전범들을 모신 신사)로 일본의 신사문화가 우리에게 부정적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고대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구분해서 봐야 한다. 일본 천손강림 신화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이즈모 대사는 그리스의 신전이나 우리의 종묘와 같은 곳이며 신라와 관련 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오오쿠니가 니니기에게 국토이양 협상을 한 무대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는 백제가 망한 664년 이후 모국인 백제와 역사를 단절하며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으로 바꾸고 만세일계의 독자적인 일본역사를 만들면서 탄생했다. 712년에 쓰인 '고사기'와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의 '신대기'에 일본 신화시대의 역사가 등장한다.
일본의 역사가 우리와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고사기'를 직접 저술하고 '일본서기' 편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학자 오노 야스마로(太安万侶)가 백제 왕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화는 우리민족의 고유종교인 신교神敎의 삼신칠성문화를 모태로 한 조화삼신과 신세 7대의 신神에서 시작하는 점에서도 분명해진다. 
조화삼신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7대 신神인 이자나기, 이자나미 부부가 일본 국토를 낳았다. 아내 이자나미가 불의 신을 낳는 과정에서 죽고 남편인 이자나기가 참회과정에서 많은 신神을 낳았으며 마지막에 세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천상을 지배하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와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쓰쿠요미月讀尊 그리고 바다를 지배하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가 태어났다. 스사노오가 천상에서 쫓겨나 어머니의 나라인 신라를 거쳐 이즈모국에 와서 일본열도를 평정하였는데 아마테라스가 남동생인 스사노오에게 국토이양을 요구하였다. 스사노오의 후손인 오오쿠니는 국토를 아마테라스의 자손인 니니기에게 양보하고 신계의 일을 맡겠다며 신궁을 지어달라고 한 뒤, 이즈모 신궁의 신체神體인 야쿠모산八雲山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아마테라스의 자손은 일본의 현실계를 다스리게 된다. 니니기의 자손에게서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일본의 1대 왕인 신무왕神武天皇이 태어난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도리이


본전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3번째 도리이다. 앞의 두 도리이와는 다른 청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이즈모 대사와 관련된 내용들이 도리이 기둥에 새겨져 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


해마다 10월 상달에 거행되는 이즈모 대사의 제사(마쯔리) 때 산 제물을 바친다. 지금은 모형으로 제작해 놓았다. 옆에는 일본인들이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걸어 두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배전拜殿


이즈모 대사의 배전拜殿은 맞배지붕으로 산과 조화를 이루며 안정감을 준다. 이즈모 대사는 일본 신사건축의 원형으로 어본전과 시메나와를 비롯해 국보로 지정된 것이 많다. 고대 일본문화에는 백제문화의 자취가 뚜렸하다. 재미있는 것이 우리의 옛부여박물관(한국현대 건축의 대부 김수근作)이 건립 당시 왜색 시비로 논란이 많았다. 이는 사실 문화의 소자출을 전혀 모른 무지에서 비롯했다. 본래 일본문화는 백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일본말로 구라다나이くだらない(백제가 없다)는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 '별 볼일 없다'는 뜻이다. 백제 것을 최고로 여겼다. 백제의 문화를 모방한 것이 일본문화인데, 도리어 일본의 신사를 베껴서 박물관을 지었다며 크게 오해를 받았던 모양이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배전拜殿의 참배객


신사에 가면 일본인들이 손뼉을 2번을 치고 기도하는 모습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이즈모 대사에서는 참배객들이 손뼉을 4번 치고 읍을 하며 기도한다. 우리의 절하는 문화와 비슷하다. 산 사람에게는 단배를, 돌아가신 분에게는 재배를 드린다. 공자나 주자 같은 성인들에게는 삼배를 드리며, 왕과 하늘의 천제에게는 사배를 드린다. 그만큼 이즈모 대사의 위격이 일본 열도의 다른 신사와 견주어 높다는 의미도 된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안내판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배전拜殿 뒷 모습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배전拜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 대옥근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어본전 뒤로 보이는 산이 야쿠모산八雲山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숫자 3을 좋아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8을 아주 좋아하며 신성시 한다. 야쿠모산의 왼쪽에는 학산이 오른쪽에는 거북산이 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일왕을 비롯한 주요 가문에서 신에게 하사금을 바치는 곳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앞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신사의 미코巫女 みこ


어본전은 일반인이 출입을 못한다. 신사의 미코는 고대국가에서 신사의 신녀였다. 이요원과 고현정이 나온 MBC드라마인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이 맡은 미실 역이 바로 신녀였다. 오늘날의 미코는 학교와 같은 전문기관에서 신녀교육을 받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왕이 신격화되면서 신도神道의 힘이 약해지고 신녀의 역할도 신사의 도우미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입구


어본전의 바닥에 보이는 둥근 원은 고대 이즈모 대사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심어주心御柱 신노미하시라다. '고사기'에 따르면 "훌륭한 궁전처럼 땅 깊숙이 반석에 큰 기둥을 깊게 박아, 고천원을 향해 치기가 높이 치솟은 신전"이 이즈모에 지어졌다. 2,000년에는 13세기(1,248년)에 세워졌던 이즈모 대사의 어본전을 지탱한 기둥이 발견되었다. 이는 직경 1.3m의 나무기둥 셋을 묶어 지름 3m가 넘는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고대출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런 것 9개를 반석 위에 받쳐서 세웠는데, 가장 가운데 심어주를 우즈하시라, 곧 우두주宇豆柱라 했다. 완성된 고대 이즈모 대사는 높이 48m의 고층 신전으로 거대한 목조 건축물이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심어주心御柱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배전拜殿과 어본전御本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800만 신神이 모이는 10월 상달의 이즈모 대사에는 신유월神有月이라는 풍습이 있다. 이즈모 지역 사람들은 이 기간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정결히 하며 근신한다. 결혼, 건축, 토목공사를 비롯해 노래를 부르거나 이발이나 손톱 깎는 것까지 삼간다. 이즈모를 제외한 일본 전역은 오히려 신무월神無月이 된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마쯔리 축제용 술통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동사東社


일본 열도 전역에서 모인 신들이 이즈모에 와서 회의하기 전에 머무는 숙소다. 어본전의 동서쪽에 각각 19사가 있다. 모두 38社다. 바둑판의 가로 세로 줄도 19줄 씩 해서 38수다. 가로 세로 19줄이 만나 361개의 점을 만든다. 바둑판은 우주를, 바둑돌은 별을, 집은 은하계를 뜻한다. 맨 가운데 점은 천원天元(우주의 중심, 태을)이라 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주인이신 하늘의 천제(상제)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본래 고대 이즈모 대사의 건축구조에는 깊은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일본 고대 신화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동사東社


신들의 회의는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간 개최된다. 회의에서는 우선 신들이 각기 담당하는 지역의 지난 1년 간 일어난 일들을 낱낱이 보고하게 된다. 또 향후 1년간의 지역 현안을 상담한다. 이 때 모든 일들이 결정되고 심지어 사람들 사이의 인연도 정해진다. 때문에 오오쿠니는 일본에서 '인연의 신'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동사東社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일본 열도의 8백만 신들이 이즈모 대사로 모이는가? 이즈모는 지리적으로 고대의 신라와 가장 가까운 일본의 변두리다. 지금도 오사카나 교토, 나라, 도쿄와 비교하면 시골스럽다. 일본도 이런 점을 의식해 양대 천손강림지로 신들의 뿌리인 고천원을 큐슈에서 점점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내리고 있으며, 신사의 중심도 이즈모 대사에서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이세신궁으로 옮겨버렸다. 고대 한국과의 관계를 끊기 위한 일본의 노력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서사西社


삼한시대에 우리민족은 10월 상달이면 하늘의 삼신상제에게 천제天祭를 모셨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서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 등의 천신제를 올렸다.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영고, 동맹, 무천을 단군조선의 제천의식이라고 했다. 이즈모 대사의 신유월 축제와 무관치 않다. 일본에서는 이런 축제를 마쯔리라 하는데, '마쯔리祭り'의 어원은 북을 맞 두드리며 신神을 맞이한다는 영고迎鼓에서 유래했다. 영고는 북을 치며 천신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무천은 하늘을 우르르 춤을 추며 '천신과 하나 된다'는 의식다. 동맹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광명의 인간으로 거듭남을 맹세하는 의식이다. '삼국지위서'의 '동이전'을 보면 동이東夷의 백성들이 추수를 마치고 다같이 모여 하늘의 삼신상제에게 천제를 올리고 밤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역사문화를 잃어버리며 이런 신성한 문화는 사라지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 밤새 술 마시고 노는 퇴폐문화로 전락해버렸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길흉을 점친 오미쿠지 종이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소원을 적은 에마繪馬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오미쿠지


일본의 신사에서 길흉을 점쳐보는 오미쿠지おみくじ와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기원하는 에마繪馬에서 신사의 신神과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지붕 위의 X자형의 치기는 솟대를 상징한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서사西社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스사노오노미코도를 모신 신사


어본전 뒤편에 일본 열도의 국신들을 평정한 스사노오를 모신 신사가 있다. 본래 이즈모 대사의 어본전에 모셔야 하지만, 그의 자손인 오오쿠니를 받들고 있는 것이 웬 말이랴. 누나인 아마테라스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초라하게 모셔진 것이 마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아들인 방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물러난 모습 같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御本殿 경내


일본 천손강림 역사의 발상지로 일본 신화시대의 전설을 간직한 이즈모 대사를 돌아 나오며 단군신화를 대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이 중국의 사서인 '위서魏書'를 인용하며 기원전 24세기 전에 단군왕검께서 조선이라는 국가를 여셨다고 밝혔다. 우리의 기록이 아닌, 중국의 사서기록에 틀림없이 단군조선이 건국되었음을 밝혔으며 우리의 기록인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조선의 뿌리를 상세히 밝혔다. 우리 선조들의 활동무대였던 만주 땅에서는 단군조선보다 천 년에서 2천 년 앞선 유적과 유물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굴되고 있다. 이 땅에도 단군 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넘쳐난다. 단군조선은 사서에 기록이 있고 유적과 유물이 엄연히 있음에도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서도, 역사박물관에서도 신화로 취급되며 실제 역사로 인정되지 않는다. 뿌리는 생명의 근원이다.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짓이다. 우리나라 상고역사의 큰 기둥인 옛 조선과 단군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현실이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서양의 역사학 대가인 크로체의 말처럼 "모든 역사는 현재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어본전과 신락전을 잇는 문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신락전神樂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신락전神樂殿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신락전 시메나와注連縄


검줄인 거대한 시메나와다. 용으로 잘 못 오해하고 있지만, 우리네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당산나무에 걸어 매든 검줄이다.

│이즈모대사出雲大社 Izumo taisha│신락전 옆의 연못



이즈모대사
195 Taishacho Kizukihigashi, Izumo, Shimane Prefecture 699-070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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